"교단 재건기의 지도자"

  박현명(朴炫明) 목사의 발자취

  
sssang2003.jpg
박목사는 1903년 7월 8일 함남 북청에서 출생했다. 엄격한 유교풍의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한문을 수학(修學)하다가 시대적인 흐름에 맞추어 신학문을 배우기 위하여 보통학교에 진학하고자 했다. 보통학교에 입학하려면 삭발을 해야하는데 유교적 사고로 인해 부모님이 완고히 반대하자 부모님 몰래 삭발을 하고 보통학교에 입학했다. 보통학교를 나온 후에는 가세가 어려웠기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하고 독학으로 학문을 도약했다.
 

  목회과정

  1922년~1925년 경성성서학원에서 지성과 영성의 훈련을 받은 후 1925년 서울 독립문성결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하여, 4년간 시무하고 안수를 받은 후 1929년 일본 동경(東京)성결교회에 부임하였다. 동경교회에서 6년동안 목회하면서 건물 문제로 무려 16번이나 교회당을 옮겨다녔으나 마침내 60여평의 예배당을 얻는 등 교회를 크게 성장 부흥시켰다. 1934년에는 경성성서학원의 교수로 초청받아 본국으로 돌아와 경성신학교 교수 겸 체부동교회에서 목회도 하였다.

 

  목회자상

  동경교회를 부임할 때와 다시 경성신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남긴 글을 통해 목회에 대한 그의 사명감과 목회자상을 엿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곧 “순교자적 각오를 통한 사명의 적극성”이다. 때문에 그는 순수한 복음의 사역자로 영혼구령에 불탔으며, 또한 사명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남달랐다. 그는 생사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을 위해 충성스러운 사명자였다. 사실 박목사는 일본에서 주님의 사역을 하면서 수 차례 죽을 고비를 겪었고 그때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죽음을 면했다.

 

  목회활동

  1) 교단지도자

  교단 조직 이전의 교단발전에 공헌한 자는 이명직 목사이지만 박목사는 교단 조직 후의 교단정립과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시며, 1945년 재흥 후 초대 총회장을 비롯하여 총 4회의 총회장을 역임했다. 총회장 시절에는 미국교회로부터 ‘활천’ 용지 3년분과 트럭 한 대를 기증받아 입국함으로 교단 발전에 기여하였다.

  2) 교단 국제교류 선구자

  박목사는 일본 동경교회 목회 시절에 당시 동경에서 어느 교회 못지 않은 교회당을 구해 성결교회의 이름을 알렸고, 총회장으로서 미국의 타교단 교회와 O.M.S. 본부를 순방하여 한국 성결교회를 홍보하였다.

sssang2003_1.jpg

  3) 후진양성

  경성신학교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의 대표적인 신학교육기관인 조선신학교(한신대의 전신)에서도 강의 하셨고, 특히 역사에 조예가 있어서 당시 교회사의 대가로서 서울대학에도 출강을 했다.

  박목사는 지도자의 자질과 역량을 중요하게 보고 유능한 교역자 양성에 역점을 두고 진력했다. 교수로서 직접 교역자를 양성하는 한편, 교단에서 유능한 인재를 발굴해서 유학을 시킬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정책을 수립하여 후배들에게 유학의 길을 터놓았다. 직접 O.M.S.유학 장학금을 받아 김선규 목사와 오봉운 목사가 교단 최초 장학유학생으로 유학의 장도에 오르게 되었다.

 

  납북과 순교

  1950년 발발한 6.25 사변을 당하여 서울신학교 구내 사택에 살고 있던 당시 8월 10일 다른 5명의 목사와 함께 납치되었다. 부인 이철순씨는 박목사가 “그들이 두려워 몸을 피하지는 않겠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걱정하지 마시오.”하고 오히려 아내를 타일렀다고 납북 당시를 회상했다. 납치 이후 아직까지 소식이 없으며 교단 총회에서 박목사가 공식적으로 교단 순교자로 공포되었다.

 

약  력

1903. 7. 8      함경남도 북청에서 출생

1922.   경성성서학원(서울신학대학교 전신) 입학

1925.   경성성서학원 졸업

1925.   독립문교회 부임

1927.   독립문교회 주임목사

1929.   일본 동경교회 파송

1934.   경성성서학원 교수

1945.   교단재흥총회에서 의장, 총리, 총회장

1947.   제2회 총회장

1948.   제3회 총회장

1950.   제5회 총회장

1945.   경성신학교 교수

1950. 6 북한공산당에 의하여 신학교에서 납북 순교